제 목 : 사랑은 언제까지나
2009.06.21 설교 중 언급된 하농, 중농, 상농 관련 내용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네 어른들은 농사꾼이라도 다 같은 농사꾼이 아니고, 농사에도 급(級)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농사라 하면 그저 논밭에 나가 줄창 땀 흘려 일하다 보면 가을에 으레 수확을 거두는 것이겠거니 하고 농사를 일종의 단순노동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같은 땅, 같은 종자로 같은 여건 하에서 농사를 지어도, 농사꾼의 급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일찍이 '하농 (下農)', '중농(中農)', '상농(上農)'으로 농사꾼의 급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곤 딸자식을 가진 집안에서는 어느 집안과 혼담이 오고 가면, 신랑감을 보기에 앞서, 그 집안의 논밭을 자세히 살펴 그 집안이 하농인지 상농인지를 가늠했다고 합니다. 하농 집안에 딸을 시집 보냈다가는 배를 곯아 평생을 고생하기에 딱 알맞으니까요. 이렇게 사돈인연 맺기를 꺼릴 정도로, 농군 가운데서도 가장 아래로 여겨졌던 하농에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농작초(下農作草)'- 농사를 짓긴 짓되 게을러서 애꿎은 땅에 잡초만 잔뜩 길러내는 것이 하농이라는 것입니다. 알곡농사가 아니라 잡초농사를 짓는 요령 없고 게으른 농부를 일컫는 말이 바로 하농인 거죠.
반면 소출을 많이 내려고 부지런히 곡식을 매만지는 이는 '중농'이라고 불렀습니다. '중농작곡(中農作穀)'- 그 경력과 성실함이 중간쯤 되는 농부는, 곡식에 매달려 알곡농사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뭘 모르는 도시 사람으로서는 수확을 알차게 거두어 낸다면, 농사꾼으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 아닌가 싶지만, 옛 어른들이 인정한 한 수 위인 상농(上農)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상농작토(上農作土)'- 가장 좋은 농사꾼인 상농은 곡식이 아니라 흙을 보살피는 농사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땅이 주는 수확에 앞서, 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 약을 뿌리고 흙과 흙 속에 사는 미생물들을 괴롭혀 쌀 한 줌을 더 얻어내기보다는, 흙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앞으로의 수확을 기약하는 겸허한 자세가 바로 농사꾼 중의 농사꾼- 상농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중농은 봄부터 가을까지 벼에 매달려 전전긍긍 뛰어다니고, 겨울은 농한기라 하여 푹 쉬지만, 상농은 겨울에도 농사를 짓는다고들 합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상농은 다음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겨우내 땅에 거름과 두엄을 넣고 언 땅을 쉼 없이 갈아 엎습니다. 그렇게 지력(地力)을 한껏 북돋워놓으면, 그 땅의 기운을 받아 크는 이듬해 곡식농사야 성공한 것이나 진배 없으니까요.
그런데 농부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상중하를 가르는 것을 넘어 성스러운 경지라 하여 '성농(聖農)'이라 불렀습니다. '성농작인(聖農作人)'- 옛 어른들은 잡초를 기르는 농부, 곡식을 기르는 농부, 땅을 돌보는 농부를 넘어선, '사람을 기르는 농부'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성농은 바른 먹거리로 인간을 구하는 농부에게 주는 명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농부- 성농.
* 제가 점심식사 후에 잠시 예수사랑교회(안상수 전도사님이 목회하시는) 가서 의자 가져오느라
앞부분을 조금 녹화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목 : 좋은 땅
내가 새벽빛을 좋아하는 까닭
그것이 희망이어서도 아니다
노래여서도 아니다
부지런한 꽃들에게 허락된
약속이어서도 아니다
밝음과 어둠이 경계를 허물고 있는
자궁 같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빛이 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꼭 한낮의 태양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난한 가슴 속
별쯤은 되고 싶었으므로
어둠은 잘라내야 하는 종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림자가 짙다는 것을 몰랐던
시절, 어둠을 모조리 없애려고
살기등등했던 그 시절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든 어둠은
반역을 눈물로 삭이고
아 어둠을 태반으로 빛은 자신의 생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땐 왜 몰랐을까
아주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새벽이었다
둘이 부등켜안은 채 섞여 있는 것을 본 것은
어둠이 허물을 벗고 밝음으로 환생하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본 것은
그렇게 하루가 태어나고 있었다
희망도 노래도 태어나고 있었다
(2008.03.15)
이 민 재